대부분의 사람들은 겉모습만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내 안에 성령님이 거하시면 바라보는 방향이 바뀌게 됩니다. 에베소서 3장은 바울 사도가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보낸 서신이자 기도입니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며"
(에베소서 3:16)
겉 모습을 보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라면, '속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영성'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나 자신과 나 이외의 모든 것들을, 내가 바라보는 것과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시선으로 말입니다.
이 세상에 '복음'과 '예수님'이 필요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만,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해 안타까움과 함께, 마음의 부담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로마서 9:1~2)
이스라엘 민족에게 구원의 역사가 없음을 깨닫고 그 자신의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결국은 육신의 고통으로 다가와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함께 아파하고 있음을 엿볼수가 있습니다.
그가 그토록 아파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의 역사에서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아니할 이스라엘 민족 앞에 놓여진 고난과 고통의 역사를 직시했을때, 아니 그 민족이 바로 자기 자신의 민족이었음을 예수님을 영접하고 깨달았을때 느낀 그 고난과 고통의 역사 앞에서 바울 사도는 아파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 자신이 박해했었던 그 자신의 민족에 대해 고통스러워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던 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그 순간부터입니다. 성령님이 임재하심이 그 자신에게 그 '갈급함'을 부여했었던 것입니다.
"내 안에 기쁨이 있는가? 그렇다면 나에게 이와 같은 고통이 있는가?"
"나에게 이와 같은 환희가 있는가? 그렇다면 또한 나에게 이와 같은 근심이 있는가?"
우리 자신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야만 합니다.
세속 속에서의 우리 자신의 습관, 성격, 본능은 쉽게 바뀌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 자신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는 그 순간부터, 그리고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임재하시게 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 자체가 바뀌게 됩니다.
그러한 속 깊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 거듭나서 이 세상의 사람들을 그 겉모습만을 보고 평가하는 '우'를 범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올곧은 시선으로 나 이외의 사람과 이 세상을 바라보는 인생, 그러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올곧은 사명을 감당하도록 합시다. 할렐루야 ~ 아멘...
Cf. 항상 생각하고있는 바이지만, 성령의 은총이 함께하는, 그 현실감있는 그날의 그 설교 말씀에 십분 모자람을 양지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틀린 내용은 오로지 저 자신의 책임입니다. 샬롬~
2018. 1. 14 주일 예배
로마서 9:1~5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겉모습만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내 안에 성령님이 거하시면 바라보는 방향이 바뀌게 됩니다. 에베소서 3장은 바울 사도가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보낸 서신이자 기도입니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며"
(에베소서 3:16)
겉 모습을 보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라면, '속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영성'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나 자신과 나 이외의 모든 것들을, 내가 바라보는 것과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시선으로 말입니다.
이 세상에 '복음'과 '예수님'이 필요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만,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해 안타까움과 함께, 마음의 부담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로마서 9:1~2)
이스라엘 민족에게 구원의 역사가 없음을 깨닫고 그 자신의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결국은 육신의 고통으로 다가와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함께 아파하고 있음을 엿볼수가 있습니다.
그가 그토록 아파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의 역사에서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아니할 이스라엘 민족 앞에 놓여진 고난과 고통의 역사를 직시했을때, 아니 그 민족이 바로 자기 자신의 민족이었음을 예수님을 영접하고 깨달았을때 느낀 그 고난과 고통의 역사 앞에서 바울 사도는 아파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 자신이 박해했었던 그 자신의 민족에 대해 고통스러워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던 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그 순간부터입니다. 성령님이 임재하심이 그 자신에게 그 '갈급함'을 부여했었던 것입니다.
"내 안에 기쁨이 있는가? 그렇다면 나에게 이와 같은 고통이 있는가?"
"나에게 이와 같은 환희가 있는가? 그렇다면 또한 나에게 이와 같은 근심이 있는가?"
우리 자신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야만 합니다.
세속 속에서의 우리 자신의 습관, 성격, 본능은 쉽게 바뀌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 자신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는 그 순간부터, 그리고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임재하시게 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 자체가 바뀌게 됩니다.
그러한 속 깊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 거듭나서 이 세상의 사람들을 그 겉모습만을 보고 평가하는 '우'를 범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올곧은 시선으로 나 이외의 사람과 이 세상을 바라보는 인생, 그러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올곧은 사명을 감당하도록 합시다. 할렐루야 ~ 아멘...
Cf. 항상 생각하고있는 바이지만, 성령의 은총이 함께하는, 그 현실감있는 그날의 그 설교 말씀에 십분 모자람을 양지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틀린 내용은 오로지 저 자신의 책임입니다. 샬롬~